출발은 대부분 벤치. 하지만 매 순간 경기에 집중하며 흐름을 파악한다. 경기 중반에 접어들면 몸을 풀기 시작한다. 팀이 절실히 출루를 원할 때 성큼성큼 타석에 들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 1루를 밟는 순간 임무 끝. 3시간 이상의 경기에서 비중은 극히 적지만, 출장시간과 영향력이 비례하진 않는다. ‘워라밸’ 최상. 이병규(38·롯데 자이언츠)는 올해 ‘3분의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병규는 22일까지 13경기에 출장했다. 팀이 16경기를 치렀으니 출장경기의 비중은 크지만, 선발출장은 단 한 차례(16일 사직 삼성 라이온즈전·3타수 1안타)뿐이다. 12경기에 대타로 출전했다. 대타로 나선 12타석에선 2안타 3볼넷을 골라냈다. 출루 후에는 곧장 대주자로 교체된다. 절반 수준의 성공률을 지닌 대타 카드가 벤치에 있는 셈이니 허문회 감독도 꼭 필요한 순간 이병규를 택한다.대타 자원들은 실패가 본전으로 여겨진다. 경기 내내 덕아웃에 있다가 빠른 공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이병규의 성적은 표본이 적어도 놀라운 수준이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이병규는 “투수와 승부는 결국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한다. 50%의 확률이다. 그래서 ‘삼진은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삼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적극적 타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병규의 생각은 반대다. 대타로 나설 때 ‘자기 공’이 아니면 초구를 치지 않는다. 이병규는 “소중한 한 타석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여기에 또 하나의 루틴이 더해졌다. 수비이닝이 끝날 때마다 이대호와 함께 가장 먼저 들어오는 동료들을 반긴다. 이대호가 먼저 제안했고 이병규도 선뜻 동참했다. 이병규는 “며칠 동안 파이팅을 많이 외쳐서 목이 다 쉬었다”고 했다.자신에게 주어진 한 타석, 3분 남짓의 시간을 위해 하루를 준비하는 사나이. 목이 쉰 이병규의 일과는 바쁘지 않은 듯해도, 오직 팀 승리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언제나 분주하다.